이번 주 목회 칼럼은 청년부 임지윤 자매의 Joyful Reading에서 있었던<높고 푸른 사다리> 나눔을 소개합니다.

먼저 가장 처음 당황했던 것은 이 이야기가 천주교 수도승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개신교 이외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었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수도승과 수도원이 너무 복잡해서 머리가 아팠지만 읽다보면서 요한 수사의 갈등 그리고 물음들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수도원이라는 곳은 어쩌면 ‘이 세상’을 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명문대생의 영리한 미카엘, 꿈이 딱히 없는 ‘모태 고아’ 안젤로, 그리고 요한 등 그들은 모두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부름을 받았고 어쩌면 이 세상에 사는 우리 모두 수도원 같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카엘과 안젤로는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도중 사고로 목숨을 잃는데 그런 점 역시 이 세상에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러 오신 예수님과 그분을 좇아 살아야 하는 우리의 인생을 상징하는 것 같았습니다.
요한은 두 친구 수사들의 죽음, 그리고 사랑했던 여인 소희와의 관계를 통해서 주님과 영적인 대화의 시간을 갖습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요한이 소희와 틀어짐으로 방황하면서 주님에게 원망 담긴 물음 그리고 본질적인 물음을 하면서 그는 주님을 더 알게 됩니다. 주님은 요한에게 “사랑하라”라는 마음의 음성을 주시는데 소희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고 끝내 소희가 떠난 요한의 삶은 절망으로 바뀝니다. 그 절망의 끝에서 주님이 요한에게 주신 답변은 “사랑이란 모든 보답 없는 것에 대한 사랑이다.”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창세 전부터 계획하셔서 친히 이 세상에 보내신 그 사랑을 요한은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요한은 자신을 만나러 온 소희를 결국 만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저는 올해 스물두 살로 인생 경험, 사랑 경험이 많이 없습니다. 어린 날의 요한처럼 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하나님과 사랑에 대해서 배웁니다. 연애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세히 알고 깨닫고 실천할 수 있게 합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음을 느끼면서 진정으로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나, 그리고 왜 하나님은 아들인 예수님을 못 박게 놔두셨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보답 없는 너무나 큰 사랑이었습니다. 그렇게 느끼고 나서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사랑을 되갚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인 저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 말입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소희의 편지가 나옵니다. 그 편지는 “now regret”, 즉 “이제서야 후회합니다”라는 닉네임의 소희가 쓴 것이었습니다. 소희는 책에서 ‘신’을 상징했던 종소리를 올려다보던 요한을 보며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거룩한 수사였던 요한을 위해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그리워하고 가슴에 묻는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보면 안타깝기도하고 이해도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둘이 계속 만나고 사랑하고 심지어 신부가 되는 길을 포기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습니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육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다양한 사랑과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워서 조금 힘겨웠지만 뜻깊고 의미 있는 독서였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편협했던 제 종교적 시야와 궁극적 사랑의 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겼습니다. 조금 유치하고 예상이 뻔히 되었던 작위적인 설정은 조금 의아했지만 오히려 쉽게 그 일들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다른 분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생생하게 보고 간접체험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