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를 방문할 때 종종 마켓을 들려 옵니다. 그중 어떤 곳은 도자기 그릇들도 팝니다. 제 눈에도 음식을 담아 먹기가 아까울 만큼 예뻐 보이는 그릇들이 얼마 되지 않는 가격에 팔립니다. 그만큼 도자기 산업이 발달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지어 잘 깨지지 않아 질릴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도 있으니까요. 지금은 흔하디 흔한 것이 도자기 그릇이라 오히려 나무 그릇이 흥미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보면 과거에는 도자기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첨단의 기술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기술자가 없어 대부분 나무 그릇을 사용하였고 고관대작 정도나 조선으로부터 수입된 도자기 그릇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답답해 하던 일본은 임진왜란 때에 닥치는대로 도자기 기술자들을 잡아 자기 나라로 강제 이주시켰다고 합니다. 도자기 기술에서 그렇게 뒤쳐져 있던 일본이 이제는 아주 높은 수준의 도자기 산업 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과거 최고의 수준에 있던 기술들을 다 잃어 버리고 오히려 배워와야 할 입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조선 시대가 기술을 천시하고 문(文)만을 강조하였기 때문입니다.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주간 한 성도님으로부터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에게는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말은 ‘OO야,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해.’였습니다. 평소에 ‘I love you.’를 쉽게 하지만 진지하게 말하는 것은 이상하게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사람들 특유의 어색함이 불편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얼마전 용기를 내어 한 아이에게 먼저 말하였습니다. “엄마는 너에게 미안한게 있어. 너를 정말 사랑하는데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나는 너를 참 사랑하고 있는데…” 듣고 있던 아이가 말을 하였습니다. “엄마,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 알고 있어.” 그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멋지고 숭고한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 일 후에 그 집사님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가 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진심을 담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잘할 수 있는 고백을 많이 잃어 버린 것 같습니다. 이번 Thanksgiving 저녁에 가족에게 먼저 진심을 담아 ‘사랑해요.’라는 한 마디를 나눌 수 있다면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면 다음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쉽게 고백할 수 있게 되겠지요. ‘사랑해요.’라는 고백이 좀더 풍성해지는 연말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