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몇 년간 서로 연락하지 못한체 지냈던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이 새로 사시는 곳이 Baltimore에서 가깝다는 사실을 통화 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한 달 반전에 저희 가정이 방문했던 도시였습니다. 너무 아쉬웠습니다. 반면 그 여행 중 만난 몇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음에도 자녀들이 그렇지 못한 경우 많다는 점입니다. 장성한 자녀들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인생의 황혼기에서 그저 마음만 타들어가고 조급해지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한인 이민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백인이나 혹은 흑인, 히스패닉, 동양인 등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교단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현재 소속 교회들 중 중고등부가 없는 교회가 70% 이상이라는 통계가 나왔다고 합니다. 작년 여름 한국의 대표적인 강남의 한 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온 분으로부터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른들의 경우는 만 단위의 성도들이 모이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 중고등부의 예배에 참석하였던 자녀의 경우는 백 명이 되지 않는 학생들과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비숍 단기선교를 통해 훈련을 잘 받은 Youth 학생들의 도움이 올 해 VBS 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단기선교 때 우리 아이들 너무 잘 섬겼습니다. 불평도 없이 힘들어도 꾀부리지 않았습니다. 가기 전에는 ‘그곳에 왜 가야하냐?’고 했던 아이들이, 내년에도 가겠다고 합창합니다. 이런 우리 아이들이 집에 가면 밖에서처럼 성숙한 제자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아이들이 덜 훈련 받았고 덜 성숙해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분위기에 자신을 맞춥니다. 집의 영적 분위기가 문제입니다. 부모인 우리들이 천국을 향해 가는 삶을, 주님을 신뢰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그 영적 분위기에 아이들도 맞추게 됩니다. 결국 우리 자녀들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들의 문제입니다. 새 학년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무한하신 우리 주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음을 보여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모가 먼저 단 몇 분이라도 아침에 주님과 그 은혜를 묵상한 후 자녀들을 대한다면 전혀 다른 영적 분위기를 창출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 아침 잔소리 대신 웃는 얼굴로 eye contact을 하며 ‘Have a good day. Jesus loves you.” 라고 말해 주는 것도 좋은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