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성도님의 이야기입니다.  친구들과 골프를 치게 되었습니다.  순서가 되었는데 마침 한 친구가 라커에 두고 온 것을 가져와야 해서 다음 팀이 먼저 필드로 나가게 하였습니다.  친구가 돌아왔고, 그래서 다음 순번에 필드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자기(첫 번째) 홀을 마치고 다음 홀을 기다리고 있는데 뒤 팀이 볼을 이쪽을 향해 날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앞의 팀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자기들을 보지 못했거나 일부러 늦장 부리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 그런가 보다 하여 손을 들어 치지 말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되며 홀을 하나씩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기회(?)만 되면 계속해서 성도님이 속해있는 팀을 향해 볼을 쳤습니다.  굉장히 황당하고 화가 날 일입니다.  볼을 맞게 되면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운동은 매너(예의)라는 말이 있듯이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이건 완전히 시비 거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뒤에서 쫓아오는 팀이 생각하기를 성도님이 포함된 팀이 새치기 한 것으로 오해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자기들 앞에서 순서를 받은 사람들은 분명히 두 홀 앞에서 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언제 끼어들어서 우리 앞에서 치고 있나? 라는 오해였습니다.  앞의 두 팀 사이에 사정으로 순서를 바꾼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해한 결과입니다.

별 것 아닌 일에 우리는 오해를 많이 합니다.  부부 간에도, 부모와 자녀 간에도 많은 오해들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쓸데없이 허비하는 에너지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분명히 ‘아’라고 말했는데, 듣는 사람은 분명히 ‘어’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일입니다.  이런 오해는 관계의 성장을 막습니다.  더 풍성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더 좋은 인생의 열매를 함께 맺어 갈 수 있는 것을 놓치게 됩니다.  주님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마 7:1).  함부로 심판할 만큼 우리의 판단이 정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를 향해 흔히 양극화 혹은 갈등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 때 소금과 빛(복의 근원)의 역할은 내가 오해할 수 있음을 늘 기억하고 상대방이 선한 의도로 나를 향해 서 있다고 이해하고 보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