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분노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분노(화)를 잘 다스리지 못해 발생하는 많은 사고, 사건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노에 대한 고민은 현대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고대 철학자들 역시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과 같은 해에 태어난 세네카는 로마의 철학자이자 네로 황제의 스승입니다. 그의 책 <화에 대하여>에서는 플라톤이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플라톤이 노예에게 화가 났을 때 그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노예에게 윗옷을 벗고 돌아서라고 명했다. 자기 손으로 직접 채찍질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손을 위로 치켜든 순간, 그는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팔을 공중에 쳐든 채로 한동안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우연히 그 광경을 보고 뭐하는 거냐고 물었다. 플라톤은 이렇게 대답했다. “화를 내고 있는 한 사내를 벌주고 있는 거라네.” 마치 사지가 마비된 사람처럼 플라톤은 야만적인 행동을 하기 직전의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 순간 그는 노예에 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보다 더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식솔들을 다스릴 권한을 스스로 박탈했다.”
이삭은 분노에 휩싸일 뻔한 일이 크게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 아브라함과 하나님께서 자기를 죽이려 하신 일이었습니다. 이삭은 얼마든지 원망하며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곁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에서에게 주려던 축복을 야곱이 가로챘을 때였습니다. 가장으로서 편애하던 에서에게 축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 리브가와 둘째 야곱이 자신을 속였습니다. 두 사람을 벌 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건에서 모두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에 대하여 분노로 채우려는 대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았고 자신을 그 뜻에 맞추었습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자신이 내는 화 때문에 귀중한 시간과 기회 등을 허비하게 됩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 중에 최고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정직하게 설 때 우리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도 분노하지 않을 수 있고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저희들로 세상이 나아져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