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한국 뉴스 가운데 예비군 훈련용 총을 카빈에서 M16으로 올 해 안에 교체하겠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남성들은 이런 기사에 여러 추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예비군 훈련에 참석했던 남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 있습니다. “왜 멀쩡하게 넥타이 매고 직장이나 사회 생활 등을 잘 하던 사람들도 예비군 훈련에만 가면 엉터리가 될까?” 어쩌면 군대 말년의 고문관 시대를 기억하며 그 연장으로 생각을 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카빈 소총으로 훈련을 한다는 기사를 보며 ‘그러니까 그렇지.’라는 생각 하게도 됩니다. 훈련장에서 하는 교육들이 너무 수준 낮고,현실성이 없다는 평가들이 계속 나왔지만 개선은 힘이 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예비군 훈련은 대한민국 남성이라면,국가를 위해 해야 하는 수고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참석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 Jury Duty(배심원 의무)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웬만하면 목사라는 이유로 바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책이 바뀌었는지 혹은 판사의 깐깐함 때문인지 사정을 봐주지 않았습니다. 한 달 반 정도를 매일 나가야 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이나 사정을 이야기해도 별 수 없다는 말에 당황되기도 했습니다. 첫 날과 둘째 날 자리에서 하루 종일 앉아 배심원을 뽑는 과정을 지켜봅니다. 가만히 보니까 대부분이 바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성실히 질의에 응답하며 책임감 있게 행동하였습니다. ‘아 이게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힘 중에 하나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언젠가 자신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는 사법 제도요 사회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더 충실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뽑히면 ‘안 되는데’라는 초조함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 되지만 주님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전문성(큰 사건이기에)이나 제 영어 실력으로는 변호사들이 선택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깊은 생각을 해봅니다. 교회에서만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에도,손해를 각오하고 성실히 행해야 참 예수의 제자요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