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 한 가정의 소식이 예쁜 사진과 함께 카톡으로 올라왔습니다. “안녕하셨어요? 한샘 동생요. 내일 집에 와요. 1/4 진도. 일명 똥개….” 강아지를 새로 입양하여 키우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강아지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생후 6주된 강아지이지만 안아보니 웬만한 성인 개보다 골격이 크고 무겁습니다. 꼭 조그만 아기 곰을 보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훈련을 하지 않았음에도 희안하게 대소변을 가립니다. 덩치는 커도 아직 아기라 틈만 나면 잠이 듭니다. 아무한테나 다 잘 안기고 투정도 부리지 않습니다. 이틀 전에 “Hand.”하고 손을 내미니 척하고 발을 내밀더랍니다. 입양되어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정이 붙기 시작하니 하나하나가 모두 예쁘고 자랑거리입니다. 다른 성도님의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개를 싫어했는데 아이들 때문에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엄마의 몫입니다. 아침에 모두 집을 나가면 혼자 강아지를 돌봅니다. 그러다 보니 정이 들고, 자기를 잘 돌보아 주는 엄마를 강아지는 무척 따르게 됩니다. 엄마는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못해도 강아지를 위해서는 선뜻(?) 50불도 지출이 됩니다. ‘언젠가’ 강아지가 자기를 보며 “엄마.”라고 부를 것 같은 기대아닌 기대가 생길 정도입니다. ‘사랑’이 싫어했던 강아지조차 애정의 대상으로 바꾸어놓습니다. 그런 강아지들은 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을 알고 반겨줍니다. 심지어는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도 던지곤 합니다. 여러 면에서 쌍벽을 이루는 고양이는 그렇지 못하다고 합니다. 아무리 주인이라고 해도 자신이 기분 나쁘면 할퀴고 도망간다고 합니다. 많은 사랑과 수고를 쏟은 주인의 입장에서는 정말 기분 상할 것 같습니다.
Mother’s Day이고 어버이 주일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어머니나 뉴욕의 장인, 장모님께 전화를 드리면 받는 인사가 있습니다. “고마워.”입니다. 그 인사가 참 거북합니다. 특별히 Mother’s Day나 Father’s Day에 전화를 드리는 것은 부모님들의 사랑에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고맙다고 하십니다. 물론 전화해 주고 기억해 주어서 고맙다는 일반적인 인사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참 죄송하고 마음이 불편합니다. 어쩌면 제가 혹은 우리가 ‘평소에 강아지만도 못하고 고양이 같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젠 받은 사랑을 값을 시간도 별로 남지 않은 것 같아 더 마음이 무겁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부모님’ 이십니다. 분명 자녀가 아닙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분은 부모님이시니까요. 주님이 나를 위해 주신 그 귀한 선물의 소중함을 다시 느껴보며 고백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